
2008년 시카고에서 열린 평화단체들의 AIPAC 반대집회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2008년 상반기에 시카고에 머문 적이 있다. 이왕 있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내보자 싶어 미국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진보적인 평화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가 평화단체들이 큰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같이 갈 건지 물었다.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시카고 지부 후원 행사가 있는데, 이들의 로비 활동에 항의하기 위해 행사장 앞에서 시위할 계획이라고 했다. 영향력이 얼마나 크길래 한 단체의 후원 행사에 시카고의 많은 평화단체가 모여 시위를 한다는 걸까 궁금했다. AIPAC에 관해 공부를 해봤더니 모여 집회를 할 만했다.
AIPAC은 미국 정부가 친유대인·친이스라엘 중동정책을 펼치도록 미 의회와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 단체다. 그 영향력은 이들이 조직하는 표와 정치후원금으로부터 나온다. 김동석 미주 한인유권자연대 대표에 따르면 AIPAC 연례 정책 콘퍼런스가 열리는 주간에는 연방의회가 사실상 문을 닫는다. 막대한 정치후원금과 표를 들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유대계 사람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으로서 의견 표출
재미 한인 그룹 중에도 ‘미국 시민으로서’ 재미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도모하고, 미국 정치권이 한반도 평화체제 정책을 지지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다.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이끌어낸 한인유권자연대,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 서명운동을 이끄는 위민크로스DMZ와 코리아 피스 나우 그래스루트 네트워크, 시민권이 없는 한인 입양인에게 시민권을 찾아주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입양인 평등을 위한 전국연대 등이다.
이들은 한인의 인권문제뿐 아니라 미국의 정책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뜻을 같이할 연방의원들과 행정부 관리들을 찾고, 학계, 언론, 캠퍼스 등을 다니며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돕기 위한 정치후원금을 모집하고 표를 조직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우리 정부나 국회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내정간섭으로 오해받아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미국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의견을 내는 것은 가능하다. AIPAC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그렇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이스라엘인이 아닌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의 정책에 의견을 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미외교 능력을 키우기 위한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은 한인 유권자 그룹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반도문제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 미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4명의 한국계 하원의원이 당선되었지만, 이들의 당선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북 정책에 대한 입장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M.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공동저서 <이스라엘 로비>에서 AIPAC의 로비가 미 정치권에 잘 반영되는 이유는 돈표 때문도 있지만, 미국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인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 문화로 인한 친이스라엘 정서, 홀로코스트 등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 미 정치권이 친이스라엘정책을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 의원들이 DMZ를 방문한다면
한국의 대미 외교의 1차적인 대상은 워싱턴 정가가 되어야 하겠지만, 근본적인 대상은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 미국 시민이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미국 정치권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한반도문제를 인권과 평화 등 인류 보편타당한 이슈들로 미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문제, 재미교포 중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문제, 미국 시민권이 없는 한인 입양인들의 인권문제 등은 한반도문제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사는 미국 시민의 인권문제다. 북핵문제 해결 및 북한 개혁개방과 인도적 지원은 곧 북한 인권문제를 개선하는 일이다. 우리의 문제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하고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미국의 이해가치와 일치하는 일이라는 것을 미국 시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미국·이스라엘 교육재단이 미 의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이스라엘 방문 지원 프로그램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미 의원들이 DMZ를 방문하고 한국의 실향민들을 만나보고 온다면, 한반도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고 넓어지지 않을까? 김동석 대표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같이 워싱턴에 김대중센터를 건립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를 미국 시민에게 소개하는 것 또한 매우 좋은 방안이다. 미국사회에 일고 있는 K-Pop 열풍 또한 우리에겐 좋은 기회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사회의 대북정책에 대한 진보·보수 간의 갈등이 미국의 한인 유권자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한인들이 지역구 의원들에게 의견을 보낼 때가 있는데, 그룹마다 다른 의견을 보낼 때가 잦다고 한다. 반면 미국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대해 이견이 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같은 분쟁국으로서 우리는 그러지 못함이 못내 속상하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 지지 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한인들, 그 시작은 한국 정치권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엔 없다. 남북문제 관련해서 한국 정치권이 초당적인 목소리를 가지는 것, 그것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을 이끌 열쇠라는 것.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국 정부와 한국 정치권이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한 번 더 되새기게 되는 이유다.
2020.12.28ㅣ주간경향 1408호
글: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2008년 시카고에서 열린 평화단체들의 AIPAC 반대집회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2008년 상반기에 시카고에 머문 적이 있다. 이왕 있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내보자 싶어 미국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진보적인 평화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가 평화단체들이 큰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같이 갈 건지 물었다.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시카고 지부 후원 행사가 있는데, 이들의 로비 활동에 항의하기 위해 행사장 앞에서 시위할 계획이라고 했다. 영향력이 얼마나 크길래 한 단체의 후원 행사에 시카고의 많은 평화단체가 모여 시위를 한다는 걸까 궁금했다. AIPAC에 관해 공부를 해봤더니 모여 집회를 할 만했다.
AIPAC은 미국 정부가 친유대인·친이스라엘 중동정책을 펼치도록 미 의회와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 단체다. 그 영향력은 이들이 조직하는 표와 정치후원금으로부터 나온다. 김동석 미주 한인유권자연대 대표에 따르면 AIPAC 연례 정책 콘퍼런스가 열리는 주간에는 연방의회가 사실상 문을 닫는다. 막대한 정치후원금과 표를 들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유대계 사람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으로서 의견 표출
재미 한인 그룹 중에도 ‘미국 시민으로서’ 재미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도모하고, 미국 정치권이 한반도 평화체제 정책을 지지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다.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이끌어낸 한인유권자연대,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 서명운동을 이끄는 위민크로스DMZ와 코리아 피스 나우 그래스루트 네트워크, 시민권이 없는 한인 입양인에게 시민권을 찾아주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입양인 평등을 위한 전국연대 등이다.
이들은 한인의 인권문제뿐 아니라 미국의 정책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뜻을 같이할 연방의원들과 행정부 관리들을 찾고, 학계, 언론, 캠퍼스 등을 다니며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돕기 위한 정치후원금을 모집하고 표를 조직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우리 정부나 국회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내정간섭으로 오해받아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미국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의견을 내는 것은 가능하다. AIPAC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그렇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이스라엘인이 아닌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의 정책에 의견을 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미외교 능력을 키우기 위한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은 한인 유권자 그룹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반도문제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 미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4명의 한국계 하원의원이 당선되었지만, 이들의 당선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북 정책에 대한 입장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M.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공동저서 <이스라엘 로비>에서 AIPAC의 로비가 미 정치권에 잘 반영되는 이유는 돈표 때문도 있지만, 미국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인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 문화로 인한 친이스라엘 정서, 홀로코스트 등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 미 정치권이 친이스라엘정책을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 의원들이 DMZ를 방문한다면
한국의 대미 외교의 1차적인 대상은 워싱턴 정가가 되어야 하겠지만, 근본적인 대상은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 미국 시민이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미국 정치권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한반도문제를 인권과 평화 등 인류 보편타당한 이슈들로 미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문제, 재미교포 중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문제, 미국 시민권이 없는 한인 입양인들의 인권문제 등은 한반도문제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사는 미국 시민의 인권문제다. 북핵문제 해결 및 북한 개혁개방과 인도적 지원은 곧 북한 인권문제를 개선하는 일이다. 우리의 문제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하고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미국의 이해가치와 일치하는 일이라는 것을 미국 시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미국·이스라엘 교육재단이 미 의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이스라엘 방문 지원 프로그램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미 의원들이 DMZ를 방문하고 한국의 실향민들을 만나보고 온다면, 한반도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고 넓어지지 않을까? 김동석 대표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같이 워싱턴에 김대중센터를 건립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를 미국 시민에게 소개하는 것 또한 매우 좋은 방안이다. 미국사회에 일고 있는 K-Pop 열풍 또한 우리에겐 좋은 기회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사회의 대북정책에 대한 진보·보수 간의 갈등이 미국의 한인 유권자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한인들이 지역구 의원들에게 의견을 보낼 때가 있는데, 그룹마다 다른 의견을 보낼 때가 잦다고 한다. 반면 미국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대해 이견이 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같은 분쟁국으로서 우리는 그러지 못함이 못내 속상하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 지지 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한인들, 그 시작은 한국 정치권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엔 없다. 남북문제 관련해서 한국 정치권이 초당적인 목소리를 가지는 것, 그것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을 이끌 열쇠라는 것.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국 정부와 한국 정치권이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한 번 더 되새기게 되는 이유다.
2020.12.28ㅣ주간경향 1408호
글: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