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문득 <빵과 장미> 대신 <장화와 워커>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서지원 피디가 담아준 임미려 DMZ숲 대표님과 나의 모습이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장화, 그리고 묵직한 워커. 워킹우먼이라 하면 보통 하이힐이나 단화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우리 둘은 장화와 워커를 사랑한다. 돌길을 다듬고 흙밭을 달려가기에 이만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DMZ숲에 가려면 통일대교를 지나야 한다. 그곳에는 군 검문소가 있고, 이 한계를 통과하지 않으면 꿈꾸듯 펼쳐진 숲으로 들어갈 수 없다. 매년 11월 23일, 막내 외삼촌 추도식 참석을 위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갈 때마다 늘 지나던 길이었지만, 이제는 그 길을 또 다른 이유로 찾는다.
DMZ숲에서 차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북한과 마주하는 판문점 JSA 부대가 나온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대남방송과 남한에서 송출하는 대북방송이 들리기도 한다. 사전허가를 받고 군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닿을 수 있는 곳. 해가 기울기 전에는 서둘러 돌아나와야 하는 곳.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은 이곳에, 3만여 평을 구입해 숲을 일구는 사람이 있다.
산을 오르고, 땅을 일구고, 유리온실을 세우고, 꽃과 이끼를 심고, 새 숲정원을 가꾸는 사람. 임미려 대표다. 그가 장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바쁜 걸음들 때문이기도 하다.
임 대표님은 나의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다. 내 첫 직장이었던 평화네트워크에서 EPS(English Peace Study)를 함께하던 대학생 멤버였다. 2000년대 초반, 작은 평화단체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평화를 토론하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료다. 이라크 전쟁과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관계와 북한인권, 동북아 평화, 기아, 빈곤,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회적 갈등에 대해 함께 스터디하던 그 대학생이, 이제 민통선 안에 복합문화공간 DMZ숲을 세운 대표가 되었고,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질문을 찾고, 해법을 함께 디자인하는 전략컨설팅 회사 <섀도우캐비닛>를 운영하게 되었다.
각자의 삶의 질문을 따라 열심히 살아가다 보니, 서로의 삶의 궤적이 조금 멀어져 사실 한동안 서로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작년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DMZ숲 사진을 우연히 본 것이 시작이었다. 그 도전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워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다가, 어느 날 응원 댓글을 남겼더니 곧바로 “경미 국장님! 안녕하세요. 저 평화네트워크에서 함께 공부했던 임미려입니다.”라는 답글이 달렸다. 긴 세월을 건너 전해진 뜻밖의 재회였다. 그리고 지금은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동료가 되어, 다시 서로의 도전을 응원하며 함께 걷고 있다.

DMZ숲을 실물로 처음 만났을 때, ‘웰니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웰니스라는 개념이 머지않아 라이프스타일과 산업 전반에 깃들어,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갈 거라는 예감이 있다. 그래서 ‘이 분야를 꼭 깊이 파고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관련 내용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읽고, 그에 맞춰 한발 앞선 전략과 솔루션을 제시해야 하는 전략컨설팅 회사로서 해야 할 즐거운 지적 노동이자, 우리의 책무 같은 거라고 할까. 여튼, 그래서 그럴까? DMZ숲이 가진 제한된 접근성이 주는 불편함이, 오히려 그 숲에서 누릴 수 있는 몰입과 치유의 깊이를 더해주는 특별한 장치가 되어줄 것 같았다.
임미려 대표님도 DMZ숲과 웰니스의 개념을 연결해보는 일을 고민 중이셔서, 브레인스토밍을 겸한 전략회의를 위해 한이경 대표님의 책 『웰니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함께 읽기로 했다. (참고로 ‘웰니스’라는 개념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은 한이경 대표님의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다음에 이 주제로 섀도우캐비닛에서 꼭 한 번 모시고 싶은 분!) 섀도우캐비닛과 DMZ숲 실무진들만 읽기에 아까워,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섀도우캐비닛과 DMZ숲 친구 몇 분도 모셔 네트워킹 모임 겸 DMZ숲 체험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이 있으실까요? 계시면 오픈 모임으로 진행하는 것도 한 번 고민해볼게요.)
DMZ숲을 만나게 된 뒤로 마음이 괜히 든든해졌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 용기가 필요할 때, 책과 펜, 노트, 그림 도구를 챙겨 이 숲에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 무엇보다 임미려 대표님과 함께하는 아이디어 회의가 매번 즐겁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이미 손안에 쥔 듯 상상하고, 그 길을 함께 달려가는 사람과 머리를 맞댈 때 느껴지는 설렘과 반짝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성경 구절을 참 좋아하는데, 그것을 실현해가는 사람을 볼 때 정말 행복하다. 눈에 확실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으로 또렷이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디디는 사람들. 그 발걸음을 나는 사랑한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온다. 섀도우캐비닛과 DMZ숲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는 프로젝트 소식도, 봄이 오는 소식과 함께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DMZ숲의 사계절 모습을 전하고 싶어 DMZ숲 페이스북에서 사진을 몇 장 얻어왔다.
참, 이날 김팝콘 홍보이사도 처음 DMZ숲을 찾았는데, 평소 점잖기로 소문난 팝이사가 “숲길에서 우사인 볼트처럼 폭주했다”는 후문이 들린다. 늘 얌전하던 팝이사를 단숨에 우사인, 아니 ‘팝사인 볼트’로 변신시킬 정도라니, 이 숲에는 분명 사람과 생명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DMZ숲 #섀도우캐비닛 #임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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