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캐후기]김다혜님 <차인순 수석전문위원의 법을 만든다는 것 3강-입법 설계과정부터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하다 후기

섀도우캐비닛



김다혜
'복음과 상황' 기자, 섀도우캐비닛 수강생


분노보다는 무력감. 해마다 2030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이와 싸워야했다. 지난해는 20대 여성 연예인들이 연달아 사망했고, 남자 연예인 단톡방에서 불법촬영물이 공유되었으며,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고,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가 드러났다. 올해 초엔 국회 청원 1호로 ‘N번방 청원’이 10만 명 동의를 얻어 N번방 방지법이 발의 및 시행되었다. 그러나 피의자들은 아직 재판을 받고 있기에 새로운 피해 사례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또 최근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과, 코로나가 장기화하자 그 여파로 높아진 2030 여성의 자살률, 형법상 낙태죄를 묻는 개정안 보도가 이어졌다. 

다시 무력감. 또래 여성들은 뉴스로 젠더 관련 보도를 듣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가을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디지털 성착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크리스천 성교육 강사 분을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매번 원고 작성은 어렵지만 준비 과정에서 그렇게 힘이 없던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하나 사건을 파헤치고 분석하는 저널리스트들과 활동가들의 저력과 기록에 마음을 크게 기댔다. 국회도 발 빠르게 법안을 만들었지만 전면에 싸워준 이 사람들과 시민사회의 저력이 컸다고 느꼈다. 젊은 여성 정치인들이 진출한 21대 국회 이전부터 마음을 기울여 젠더 관련 법안을 힘써왔을 사람들의 존재와 노력을, 그래서 잘 몰랐다.

지난 12일 ‘입법과 젠더의제’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만난 차인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국회에서 바로 그런 일을 해온 이였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강연은 줌(ZOOM)으로 진행되었다.) 섀도우 캐비닛 연속강연 ‘법을 만든다는 것’의 마지막 강연자인 그는 2017년 ‘미투’ 사태 이후 상정된 젠더 법안들이 발의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오랫동안 여성학을 연구하다 2003년부터 여가위 입법 심의관으로 일해 왔으며 올해 초 수석전문위원이 된 케이스였다. 

앞서 두 강연자와 달리 학자 느낌이 나는 그는 일반 시민들에게 낯설 수 있는 ‘전문위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각 위원회 전문위원은 상정된 법안을 검토하는 일을 하는데 기존 법률들과 충돌하는 지점은 없는지, 국민과 정부가 수행이 가능한지, 시민사회와 다른 부처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등을 살피는 일을 한다. (수석전문위원은 이러한 입법 활동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언론들은 법안이 발의되고 국회에서 상정되는 순간만을 조명하지만, 계속해서 토론·점검된 법안을 놓고 전문 위원실이 정부 및 발의한 의원실과 논의하는 작업들이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차 수석전문위원은 ‘성 인지 입법’의 종류를 소개했다. 젠더 입법 관련하여 이렇게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는데, 차 수석 위원은 사회적 담론이나 필요도가 높아지면 새로운 목록이 생겨나거나 이 안에서 다시 세분화될 수 있음도 언급했다. (1. 성평등 정책의 개념 2. 성차별의 금지 및 개선 3. 여성(젠더)폭력방지 4. 여성건강/가족 지원 5. 돌봄노동 사회화와 일/가족생활 양립 6. 정치/경제 참여 확대 5.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조치가 그 내용이다.) 



현재 뜨거운 낙태죄 폐지 문제와 성 재생산권, 차별금지법, 비동의강간죄와 같은 21대 국회의 젠더입법 과제들을 짧게 짚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다른 중요 법안들에 밀려 제대로 충분히 논의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40여년간 국회에 머물러 있던 호주제 폐지(2005년)를 비롯하여 성인지 예산제도 도입(2006년), 성폭력 친고죄 폐지(2012년) 등 젠더 입법 역사를 함께 돌이켜보자, 우리사회는 늘 모든 것이 더뎠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나아왔음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차 수석전문위원과 그에 앞서 존재했던 여성들이 국회에서, 자리에서 분투해왔다는 것도. 

“일을 하면서 감사한 건, 여가부나 여가위는 근대국가가 이행되고 처음부터 그냥 있었던 게 아니라 시민사회가 요구해서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이런 역사는 제 위 선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왔고 기회를 얻어서 저도 함께 하고 있고요. 또 지금처럼 디지털 전환기에 많은 것들이 변화되고 있는데 이렇게 어슴푸레할 때 젊은 세대 분들이 이런 정치정책 영역으로 나타나줘서 감사해요. 여러분들이 또 많은 것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강연 말미, 참석자들은 약 한 시간 동안 차 수석전문위원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법안이 통과될 때 시민사회의 요구나 사회적 압력이 많이 도움이 되는지,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젠더 감수성을 위한 교육이 존재하는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국회에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답변하면서 그는 내내 다양한 생각들로 빚어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정론이고 당연한 말인데 내가, 그리고 우리사회가 잘 하지 못하는 일이다. SNS상에서도 맥락 없이 한 줄을 떼어서 상대방에게 성급한 공감이나 조롱, 충고가 난무하니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 전에 다르다는 것부터 이해를 하고 얘기를 듣다보면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충분히 민주적 토론과 대화를 통해 좁혀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발언을 놓고 사람을 예단하고 구분 짓기보다 풍부한 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만약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말을 안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생각은 변화하는 거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지고요. 저는 우리 사회가 젠더전환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던 관계가 평등한 관계로 이행하면서 서로 다른 인식이 부딪히고 갈등이 가시화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거죠. 어느 정도 지나면 상당히 안정적인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이 글의 첫 문장을 쓴 나와 같이 무력감에 시달렸던 한 강연 참가자에게 그는 자신이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의 경험을 공유했다.

“공부를 마치고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 안 됐을 때 너무나 당연한데 왜 이렇게 쉽지 않을까에 대한 절망감과 답답함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그나마 잘 되는 편인데, 그때는 서로 언어 소통이 안 되는 단계였거든요. 정치 참여의 대표성에 대한 다양함은 부족하지만 생각은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국회에 모여서 의사결정을 해요. 그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나중에 이러한 갈등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국회는 ‘타협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생각과 생각이 부딪힐 때 상대방을 ‘어떠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을 가르치려 들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뜨끔했던 대목들이다. 그러나 차 수석전문위원의 말처럼, 국회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잘’ 타협해야 굴러간다. 그는 국회의 본질이 ‘타협하는 곳’이기에 마음을 여유 있게 가지면서 지치지 않고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간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지칠 때도 있지 않나, 어떻게 그렇게 지구력을 갖고 한 분야에서 계속해서 일할 수 있었나 하는 질문에 그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힘들 때 불교 경전을 읽기도 했다고 답했다. 덤덤하고 차분하게 말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부드럽기에 잘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심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말한 ‘타협’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총 3강으로 이뤄진 ‘법을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끝이 났다. 국회의원, 보좌관, 수석전문위원이라는 다양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의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평소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을 혼자서, 혹은 다른 참여자들을 통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국회를 왜 덮어놓고 불신하면 안 될까? 국회는 무슨 역할을, 어떤 일들을 하며 시민사회는 이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시민으로서 나는 주권자인가? 그리고 어떻게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잘 타협할 수 있을까? 사실 답을 찾은 것보다 찾지 못한 게 더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일이 드물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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