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섀도우 캐비닛 ‘법을 만든다는 것’ ―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김다혜
'복음과 상황' 기자, 섀도우캐비닛 수강생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처음 강연 제목을 마주했을 때 ‘국회’와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참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편견이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년에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별히 ‘국회’에 대한 불신은 아니었지만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무력감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던 듯 싶다. ‘촛불 정권’이라고 불렸던 현 정부 정권하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세월호는 뚜렷하게 밝혀지는 것들이 없다. 유가족들과 연대인들을 여전히 힘겹게 싸우고 있으며 최근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국회 내에서도 애쓰는 의원들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더뎌 보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금씩, 불신이라기보다는 무력감이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불신이 가중되거나 무력감에 젖어 손을 놓는다면 ‘누가’ 이익을 볼까?

지난 11월 16일, 강연과 동일한 제목의 책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을 쓴 박선민 보좌관이 섀도우 캐비닛이 기획한 연속 강연 ‘법을 만든다는 것’의 두 번째 강연자로 마이크를 잡고 던진 질문이다. 국회 내 4급 보좌관 가운데 단 8.5%에 불과한 여성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입법뿐 아니라 재정, 일반 국정 등 국회가 하는 다양한 일과 16년간 국회에서 일하면서 경험하면서 쌓은 정치관을 한 책으로 녹여냈다. 앞서의 질문에서 그는 행정부, 사법부와는 달리 입법부는 시민이 직접 뽑고 평가하는 대리자들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로 하여금 시민을 대표하게 하는 일이 ‘입법부의 존재 이유’인데 이들을 덮어놓고 불신하는 일은 불리한 선택이라는 지적이었다. 한계가 있고 느리지만 가장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곳이 입법부라고 덧붙이면서.
소수의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다양하게 뽑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고 이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민들의 지혜가 필요하겠으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최근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개인의 완벽한 실천(불가능하다.)보다 가능한 많은 이들을 위해 문턱을 낮추는 쪽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 제로 웨이스트나 재활용을 열심히 하더라도 산업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즉 기업을 규제하는 법이 바뀌지 않으면 한계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어떨 때’ 법이 만들어져야 할까? 박선민 의원이 제시한 ‘입법이 필요한 상황’은 크게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 둘째, 법이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 셋째, 법이 있으나 실효성이 없는 경우. 넷째, 법이 있으나 시행령으로 제한한 경우. 다섯째, 적용에 있어서 사각지대가 있는 경우. 여섯째,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경우이다. ‘언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나 세분화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고 미약하게나마 왜 이 법안이 문제가 되고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을 고려할 수 있을지 생각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각 사례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6항, ‘상법’ 제732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5조, ‘도로교통법’ 제12조의2,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사회복지세법’이다.)
그러나 박 보좌관은 법안발의를 너무 많이 하는 현황 또한 비판했다. 발의한 법안 수로 임기직인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중요하고 논쟁적인 법들보다는 사회적 갈등이 적은 법들이 많이 발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말 필요한 법들은 후순위로 밀려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많은 법안들을 세심하게 심사하기도 어렵기에 법안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법이 많이 만들어져서 복잡해질수록 이를 해석하는 사법부의 권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듣고 나니 “법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당연한 그의 말이 낯설게 다가왔다. 필요한 법을 잘 만들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갈등은 점차 커지는데 백래시가 거세거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제정되지 않을 수 있고, 어렵게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보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은 입법에 집중되는데 이후 시행이나 판결에 있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때 이를 주목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꾸준히 파고드는 것이 필요한 자세임을 되새겼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너무 지난한 과정이다. 그의 원동력이 몹시 알고 싶었으나 다음의 글이 PPT의 마지막을 채웠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도 불가능한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막스 베버, 박상훈,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후마니타스, 291쪽)
열정도 자신이 없는데 균형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그가 말하는 ‘꾸준함’인 듯 싶다. 장기 레이스를 달리는 사람의 인내심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연속 강연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순서에는 차인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강연자로 선다. 그는 여성학을 가르치다 대학 여성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고 2003년도부터는 국회 여가위에서 줄곧 활동해오며 여성학 관련 저서들을 펴낸 바 있다. 마지막 강의에선 지구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아주 조금이라도 얻어갈 수 있으면 한다.
이어지는 법을 만든다는 것 마지막 강의
<차인순 수석전문위원의 입법 설계과정부터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하다>에
함께 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D
>>> 법을 만든다는 것

📸 오늘의 홍보이사님
등 뒤에 숨어서 선민님 몰래 딴짓하는 팝코니 🤦🏻
섀도우 캐비닛 ‘법을 만든다는 것’ ―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김다혜
'복음과 상황' 기자, 섀도우캐비닛 수강생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처음 강연 제목을 마주했을 때 ‘국회’와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참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편견이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년에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별히 ‘국회’에 대한 불신은 아니었지만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무력감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던 듯 싶다. ‘촛불 정권’이라고 불렸던 현 정부 정권하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세월호는 뚜렷하게 밝혀지는 것들이 없다. 유가족들과 연대인들을 여전히 힘겹게 싸우고 있으며 최근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국회 내에서도 애쓰는 의원들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더뎌 보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금씩, 불신이라기보다는 무력감이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불신이 가중되거나 무력감에 젖어 손을 놓는다면 ‘누가’ 이익을 볼까?
지난 11월 16일, 강연과 동일한 제목의 책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을 쓴 박선민 보좌관이 섀도우 캐비닛이 기획한 연속 강연 ‘법을 만든다는 것’의 두 번째 강연자로 마이크를 잡고 던진 질문이다. 국회 내 4급 보좌관 가운데 단 8.5%에 불과한 여성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입법뿐 아니라 재정, 일반 국정 등 국회가 하는 다양한 일과 16년간 국회에서 일하면서 경험하면서 쌓은 정치관을 한 책으로 녹여냈다. 앞서의 질문에서 그는 행정부, 사법부와는 달리 입법부는 시민이 직접 뽑고 평가하는 대리자들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로 하여금 시민을 대표하게 하는 일이 ‘입법부의 존재 이유’인데 이들을 덮어놓고 불신하는 일은 불리한 선택이라는 지적이었다. 한계가 있고 느리지만 가장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곳이 입법부라고 덧붙이면서.
소수의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다양하게 뽑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고 이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민들의 지혜가 필요하겠으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최근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개인의 완벽한 실천(불가능하다.)보다 가능한 많은 이들을 위해 문턱을 낮추는 쪽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 제로 웨이스트나 재활용을 열심히 하더라도 산업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즉 기업을 규제하는 법이 바뀌지 않으면 한계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어떨 때’ 법이 만들어져야 할까? 박선민 의원이 제시한 ‘입법이 필요한 상황’은 크게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 둘째, 법이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 셋째, 법이 있으나 실효성이 없는 경우. 넷째, 법이 있으나 시행령으로 제한한 경우. 다섯째, 적용에 있어서 사각지대가 있는 경우. 여섯째,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경우이다. ‘언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나 세분화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고 미약하게나마 왜 이 법안이 문제가 되고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을 고려할 수 있을지 생각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각 사례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6항, ‘상법’ 제732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5조, ‘도로교통법’ 제12조의2,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사회복지세법’이다.)
그러나 박 보좌관은 법안발의를 너무 많이 하는 현황 또한 비판했다. 발의한 법안 수로 임기직인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중요하고 논쟁적인 법들보다는 사회적 갈등이 적은 법들이 많이 발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말 필요한 법들은 후순위로 밀려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많은 법안들을 세심하게 심사하기도 어렵기에 법안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법이 많이 만들어져서 복잡해질수록 이를 해석하는 사법부의 권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듣고 나니 “법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당연한 그의 말이 낯설게 다가왔다. 필요한 법을 잘 만들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갈등은 점차 커지는데 백래시가 거세거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제정되지 않을 수 있고, 어렵게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보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은 입법에 집중되는데 이후 시행이나 판결에 있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때 이를 주목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꾸준히 파고드는 것이 필요한 자세임을 되새겼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너무 지난한 과정이다. 그의 원동력이 몹시 알고 싶었으나 다음의 글이 PPT의 마지막을 채웠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도 불가능한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막스 베버, 박상훈,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후마니타스, 291쪽)
열정도 자신이 없는데 균형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그가 말하는 ‘꾸준함’인 듯 싶다. 장기 레이스를 달리는 사람의 인내심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연속 강연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순서에는 차인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강연자로 선다. 그는 여성학을 가르치다 대학 여성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고 2003년도부터는 국회 여가위에서 줄곧 활동해오며 여성학 관련 저서들을 펴낸 바 있다. 마지막 강의에선 지구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아주 조금이라도 얻어갈 수 있으면 한다.
이어지는 법을 만든다는 것 마지막 강의
<차인순 수석전문위원의 입법 설계과정부터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하다>에
함께 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D
>>> 법을 만든다는 것
📸 오늘의 홍보이사님
등 뒤에 숨어서 선민님 몰래 딴짓하는 팝코니 🤦🏻